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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중혁과 나의 첫 만남은 해가 간신히 고개를 들이민 이른 아침이었다.

적막한 버스 안에는 버스기사와 나, 그리고 한 남학생만이 있었다. 뒷문 바로 옆 자리에 앉은 그는 의자의 등받이 보다 한참은 넓은 등을 드러냈다. 언뜻 볼 때마다 불편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구태여 말을 건다던가 하지는 않았다. 그저 다시 고개를 내리고 휴대폰을 볼 뿐이었다.

 

달리던 버스가 멈춰 선 것은 한 고등학교 앞이었다. 한정거장 전부터 문 앞에 서있던 유중혁이 빠르게 내렸고 나는 그를 따라, 하지만 느긋하게 내렸다. 순간 발을 헛디뎠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꼬꾸라졌다. 바르게 설 순발력은 없었지만 손에서 미끄러지려하는 휴대폰을 강하게 잡은 뒤 품안으로 끌어당길 순발력은 있었다. 그대로 넘어지려는 순간 강한 손길이 팔뚝을 잡았다. 그대로 끌려가자 바닥보다는 딱딱하지는 않지만 단단한 무언가에 얼굴을 부딪쳤다. 멍한 정신을 부여잡고 고개를 들자 버스에서 자주 보았던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괜찮나?”

“네...”

 

 얼떨결에 존댓말이 튀어 나왔다. 큰 손에 잡힌 팔뚝이 아파올 무렵에야 정신이 차려졌고 지금의 자세가 굉장히 민망한 자세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이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 이른 아침이라는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다리에 힘을 주고 바르게 서 그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힘을 푸는 손이 아쉬워 보인 것은 나의 착각일까?

 

“김독자 맞나?”

“제 이름을 어떻게 알았죠?”

 

 그는 약간의 흉터 자국이 있는 강인한 손가락을 뻗어 내 가슴팍에 달려있는 명찰을 툭툭 쳤다. 플라스틱 재질의 명찰이 손톱과 부딪히며 약간의 소리를 내었다. 늘 달고 다녀 있는 줄도 몰랐던 명찰의 존재를 깨닫는 순간이었다. 고개를 살짝 내리자 그의 명찰도 보였다. 유중혁. 단단한 손과 잘 어울리는 강인한 이름이었다. 나와 같은 색의 명찰. 같은 학년이었구나.

 

“고맙다. 유중혁.”

 

 자연스럽게 놓은 반말에도 유중혁은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고 척척 앞으로 걸어 나갔다. 어차피 같은 학년이라면 같은 건물, 같은 층을 쓰기 때문에 그를 따라 나섰다. 넓은 운동장과 차가운 복도를 지나 도착한 곳은 본관의 4층. 그것도 3번째 반이었다. 1-3이라고 적혀 있는 앞문을 연 유중혁은 반 안으로 들어갔다.

 

“같은 반이었어?”

“그렇다.”

 

 입학을 한지 한 달이 넘어갔음에도 같은 반. 그것도 항상 같은 버스를 타고 등교하는 학생을 모르는 것은 내의 잘못이 컸다. 학교에 들어오기만 하면 휴대폰에 꿀이라도 발라 놓은 듯 고개를 박고 보기만 했으니 누구와 같은 반인지,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민망함에 뒷머리를 긁적였다. 가장 뒤쪽 창가 자리, 가장 시선이 닿지 않는 내 자리에 앉았다. 3반의 학생 수는 홀수였고 자연스레 홀로 앉는 학생이 생겼다. 모두 꺼려하는 그 자리는 내가 자체했고 그렇게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들었다. 바로 앞자리에 앉는 유중혁에 내가 얼마나 주변 사람들에게 무심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 잘 부탁해?”

 

 이게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 이후 우리는 3년 동안 같은 반이 된 것으로 모자라 같은 대학까지 진학했다, 유중혁은 컴퓨터 공학과로 나는 문예창작학과로 진학하였다. 인문대학과 이공대학은 거리가 있었음에도 우리는 항상 함께 했다. 아니 이것은 나의 자만이었고 우리의 관계는 유중혁의 노력이 있었음을 깨달았다.

 

“좋아한다, 김독자.”

“응? 나도 좋아해.”

 

 평소와 다름없이 우리는 유중혁의 자취방에 누워 있었다. 소파에 등을 기대 앉은 유중혁과 그의 허벅지를 베고 누운 나. 유중혁의 몸은 전체적으로 운동으로 다져진 몸인지라 딱딱하기 그지없었지만 그 딱딱함은 오히려 나에게는 익숙했다.

 

태어나길 부터 귀찮음을 가득 끌어안고 태어난 나는 가끔은 앉아있는 것조차 귀찮을 때가 있었고 그럴 때마다 유중혁은 자신의 허벅지를 빌려주었다. 처음에는 부담스러웠지만 그마저도 금세 익숙해져 이제는 유중혁의 허벅지가 아니면 베고 눕는 것이 어색할 때도 있게 되었다. 유중혁은 이렇게 천천히 나를 물들여갔다.

 

“아니 그런 감정으로 말고.”

“어떤 감정인데?”

“나를 봐라 김독자. 좋아한다.”

 

 게임기를 옆에 내려놓은 유중혁은 나에게서 휴대폰을 빼앗고 나의 눈을 깊게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그의 감정이 얼마나 무거운지, 나와 얼마나 다른지. 순간 솟아오르는 알 수 없는 감정에 유중혁을 밀치고 도망치듯 방을 빠져나왔다.

 

휴대폰을 두고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근처 놀이터에 도착하고 나서였다. 차마 다시 무거운 감정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 휴대폰은 포기하기로 하였다. 그렇게 놀이터에서 한참을 멍 때리다가 터덜터덜 내 자취방으로 향했다.

 

그 뒤로는 유중혁을 볼 수 없었다.

이렇게 깨달았다.

 

유중혁이 나를 계속 봐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교만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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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좌,

'진실을 말하는 거짓말쟁이'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각 

 

중혁독자 / 7대 죄악, 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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