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독자는 입술을 꾹 깨물고 세 글자를 노려보았다. 울컥 솟아오르는 감정이 제가 생각하기에도 유치하기 짝이 없었지만, 성가시게도 감정이라는 것은 이성이라는 제 단짝의 말을 좀처럼 들으려고 하지 않는 장난꾸러기같은 녀석이었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쾌락, 욕망, 섹스, 사랑, 유희. 참 좋으시겠어요. 아주 선명하게 붉은색을 띄고있는 단어 몇 개가 아지랑이처럼 눈앞에 아른거렸다.
쾌락사. 복상사.
[돌연사의 일종으로, 심장마비 등의 원인으로 남녀가 잠자리하는 중 남자가 여자의 배 위에서 갑자기 죽는 것. 의학적으로는 남녀가 잠자리하는 중에 또는 성교가 끝난 뒤 몇 시간이 지난 시점까지 수면 중에 죽는 것을 가리킨다. 이 경우에는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
그는 설렁설렁 스크롤을 내리며 입안에서 단어를 굴렸다. 도르륵 소리를 내며 구르는 구슬같이 뭉쳐진 단어들 하나하나가 맵고 짠 맛을 냈다. 극락사랜다, 좋댄다. 가볍게 뱉어내는 말이라곤 전부 새까맣거나, 허옇거나, 혹은 중간도 뭣도 아닌 것 같은 회색을 띈 저로서는 아무런 감흥도 없는데 그짓을 하다가 죽기까지 한단다. 좋댄다. 다시한번 퉁명스래 중얼거리는 목소리에는 호기심같은 근지러운 감정까지 달라붙어 그는 제 머리를 벅벅 긁었다.
김독자는 작가였다. 별 것도 아닌, 읽는 사람도 별로 없는, 담백하기로서는 멀건 죽과도 같은 글을 쓰는 작가. 그런 그의 하나뿐인 여자 사람 친구인, 표절작가 논란이 늘 따라붙는 친구 한수영이 툭 뱉어놓고 간 한마디 말이 이렇게 그를 흐트러뜨렸다. 장난처럼 훅훅 던지는 말들에 얻어맞아 뒤통수가 얼얼한 것이 하루 이틀 일도 아니건만 며칠째 슬럼프인 김독자에게 콩주머니같은 한수영의 말이 맵디 매운 고춧가루를 담은 자루가 되어 날라올 줄은, 당사자도 몰랐을 것이다.
"네 글은 너무 맛이 없어."
"시비터냐"
"아, 새끼야. 꼬아서 듣지 말고."
한수영은 와락 인상을 찌푸리며 볼펜 끝으로 말랑한 김독자의 볼을 쿡 찔렀다. 아야. 엄살부리지도 말고.나한테 그런게 통할 것 같냐? 김독자는 이제는 제 볼을 가지고 놀기 시작한 한수영에 울상을 찌푸리며 속으로 말을 삼켰다. 너만큼 잘 통하는 사람도 없다.
"뭐, 내 글이 어때서. 그다지 잘 쓴 글은 아니지만.."
"너 잘 써, 멍청아. 너는 자존심은 유중혁 콧대보다 높으면서 왜 자존감은 내 발끝에도 못미치냐?"
중혁이 콧대보다 높은 건 없어. 하나뿐인 남자 사람 친구의 아주 잘난 얼굴을 떠올리며 김독자는 중얼거렸다. 으이구, 새끼야. 지금 그게 문제냐. 한수영은 김독자의 이마를 쥐어박았다.
"네 글은 그냥 그거야. 고급 탄산수."
"알아듣게 말해줄래?"
"건강에 좋고, 탄산 톡톡 터지는데 맛은 드럽게 없다고."
이런 젠장.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은 상황에서 발뺌하려고 드니 촌철살인의 귀재이신 한수영님께서 정곡만 짚어 찌르신다. 탄산수같대. 내 글이. 한김 간 콜라같다고. 그 더럽게 맛없는 거! 김독자의 귀에 한수영의 한심하다는 말투의 탄산수에 대한 설명이 메아리쳤다. 건강에 좋고, 탄산 톡톡 터지는데. 맛은.. 더럽게 없다고. 누군가 심장에 탄산수 한트럭을 들이부었나, 왜이렇게 따끔거려. 김독자는 한수영 모르게 표정을 싹 가리며 입술을 불퉁하게 내밀었다.
"..."
"세상에 콜라, 사이다..아무튼 더럽게 많은 음료수가 있는데 탄산수만 몇 박스씩 시켜먹을 사람이 어딨냐."
"있을 수도 있지."
그러니까 좀 후추도 치고, 고춧가루도 넣으라고. 야한씬이라도 하나씩 넣어주면 독자들이 얼마나 좋아하겠어. 넌 독자면서 그것도 모르냐. 한수영의 따발총같은 말들이 김독자의 가슴에 푹푹 박혀들었다. 아니야, 한수영 넌 몰라. 아주 근본적인 것부터가 틀려먹었다고. 후추 좀 치고, 고춧가루도 넣으랬나? 그런데 친구야, 너는 지금 욕조없는 놈에게 입욕제를 사라고 강매하는 꼴이란다.
난 무성욕자라고..
아마, 도. 마지막 말은 허공으로 흩어졌다.
***
김독자는 글만 담백한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의 성정도 누군가 강제로 이끌어주지 않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성미의 남자였다. 보통의 사람이 자기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목줄마냥 쥐고 있다고 친다면, 김독자는 아주 헐렁하게 묶은 제 목줄의 끝을 방치하고 있는 꼴이었다. 누구나 나 좀 끌고가봐요. 이 거칠고 험한 세상을 혼자 힘으로 길을 내기에 나는 힘들고 귀찮아요. 나른하게 벤치에 누워 낮잠을 즐기는 미남, 좋게 말해 방랑자, 진실을 드러내자면 한량.
그런 그를 그나마 사람답게 만들어 놓은 것은 소꿉친구 유중혁, 불알친구 한수영.
그리고, 뭔지 모를 이길영.
유중혁은 살면서 김독자가 손에 꼽힐만큼 적은 수로 사람에게 다가간 경험 중 첫경험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으로, 뭣도 모를 적에 서로의 것을 애무해주는 류의 장난을 치다가 유중혁의 유난히 크고 아름다운 것에 질려 성욕에서 한걸음씩 물러서게 된, 트라우마 아닌 트라우마의 주범이었다.
그냥도 저렇게 큰데, 문지르니까 더 커지잖아. 뭐야, 저게.
무서워.. 지레 겁을 집어먹고 벌벌 떠는 김독자를 어리둥절한 눈으로 바라보는 유중혁, 어딘가 살짝 비틀린 풋사과같은 추억을 회상하며 김독자는 허허, 웃었다. 제 첫사랑이 와장창 깨지는 순간이었고, 언젠가는 유중혁의 것을 받아낼 그의 짝을 생각하니 불쌍해져 어느 순간부터 섹스란 아프고 덧없는 것이라고 여기고 살았다. 제 몸 아픈 것은 딱 질색이라 어떻게든 안아프게 죽기 위해 인생의 모토를 <자다가 죽기>로 정한 사람이니 썩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여기서 문제는 김독자가 이런 자신의 생각이 뭔가 괴랄하다는 것을 은연중에도 인지했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지 않았는데, 그래서 어린 마음에 피어난 새싹이 성체가 되도록 김독자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박으면 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색욕을 완전히 잘라냈다.
한수영이 들었다면 아이고 이 또라이가 하고 경을 칠 일이었지만, 아무튼 그녀에게도 비밀인 이야기였다. 한수영은 모두가 눈독을 들이고 있는 제 친우가 성적으로 꽤 둔한 편임을 알고 있었지만, 김독자가 트라우마가 생긴 날 김독자의 비명소리에 쳐들어갔다가 졸지에 친구 불알까지 전부 봐버린 그녀로써는 그냥 저새끼가 눈이 오지게 높아서 저런 거겠지, 싶을 뿐이었다.
나이가 몇인데. 알아서 하겠지.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제게 김독자에 대한 호감을 표시하는 사람 중 괜찮은 사람이 있으면 은근슬쩍 붙여주는 정도. 슬프게도 유중혁이 기준이라 한수영의 기준점을 통과하는 사람은 손에 꼽혔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제 앞에 앉아서 싱글거리며 자신을 응시하는 소년에게 있었다.
"길영아?"
"네, 형."
"형 얼굴 뚫리겠다."
"하하, 난 형의 다른 걸 뚫고싶은데."
오싹. 사랑스러운 얼굴로 제 후장 뚫고 싶단 소릴 하는 어린 것이, 최근 김독자의 최고 난제였다. 한수영님의 높은 기준 하에 선별된 손에 꼽히는 사람 중 유일하게 여즉 김독자의 곁에 남아있는 한 사람. 멸살대학교 생물학과 이길영. 뽀얀 피부에 날렵한 몸, 짙은 갈색 머리카락. 다정한 눈매는 때때로 제 나이의 것과는 어울리지 않을만큼 짙어졌다. 스무살을 겨우 넘겼다고 했는데, 이길영은 첫날부터 김독자를 완전히 압도했다.김독자는 이길영의 앞에서 무력한 한마리의 피식자에 불과했다.
"안되는 거 알잖아."
"아직 시도도 안해봤는데요?"
"그러니까, 거기까지 가는 것조차 안된다니까."
"만질 수 있게 허락해주시면, 제가 어떻게든 해볼게요."
말이나 되는 소리를 해.틈을 눈치채고 살살 덤벼드는 조그만 포식자는 늙은 제가 보기에도 매력적이고, 선이 예쁜 몸을 가졌다. 하긴, 그 한수영을 공략한 앤데.이길영은 한수영과 아무런 접점없이 김독자 하나를 접점으로 친해졌다고 했다. 김독자는 참지 못하고 입가로 웃음을 흘리며 어느새 제 손바닥에 뺨을 부비고 있는 소년을 빤히 응시했다.
[너 조심해라.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이 있어.]
[길영이? 귀엽던데, 왜.]
[말도 마라. 걘 신입생이고 난 졸업학번인거 알지? 그런데 눈하나 깜짝 않고 뭐라고 하는지 알아?]
[뭐, 친화력 하난 좋아보이더라.]
['누나 아까 같이 있던 사람 동정이에요?']
김독자는 회상하다가 저도 모르게 덜컥하여 헛기침을 내뱉었다. 와, 그날 진짜 살면서 기침 제일 많이 해본 날. 아무것도 모른다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눈을 맞춘채 손바닥에 입을 맞추는 이길영은, 정말이지. 눈에 그려진다 그려져, 멀쩡한 허우대 하고서는 한수영한테 다가가서 뻔뻔한 질문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이길영. 눈에 보인다, 보여.
[컥, 콜록, 커헉..]
[당돌하다고 표현하기에는 애가 참..]
[그래서 뭐라고 했는데?]
[처녀라고 했는데.]
[이 미친 인간이!]
김독자는 자신이 담백한 인간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하지만 완전한 무성욕자인가, 하면 아무래도 말끝에 자꾸 아마도가 붙는 것이었다. 호기심, 그것이 문제였다.
그는 작가였다. 모든 행위에 대해 탐구심을 가진. 뭐든 해보고싶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은. 그런 그에게 이길영은 끊임없이 속삭였다. 아프지 않아요, 죽을만큼 기분이 좋다잖아요.형은 궁금하지 않아요?김독자는 그런 그의 속삭임에 홀려 갈팡질팡 하다가 바로 오늘. 그래, 한수영의 가벼운 한마디가 기어코 그를 자극해버린 오늘. 후추의 매운맛을 한번 보자고 눈을 질끈 감고 향신료의 향연을 받아들일 준비를 했다.
***
"오늘은, 감이 좋은데요?"
"흐음, 어떤데? 뭐 얼마나 살았다고 그런 감이 있냐, 넌."
"좋아하는 사람이 갑자기 색기를 두르면 다 알죠, 그런 건."
그런 건 없는데. 혀를 내두를만큼 자연스러운 대답에 김독자는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뭘먹고 자라면 저런 애가 나와, 변태 할아버지를 압축해서 빚어놓은 꼴이네. 이길영은 손바닥에 입을 맞추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엄지손가락과 검지가 이어지는 부분에 살짝 잇자국을 남겼다. 별 것 아닌데도 간지러운 느낌.
"흣, 으.. 이상해. 그거 하지마."
"난 형이 하지 말라는 건, 전부 하고싶더라."
"으음.. 너 오늘은 그럼 설거지 하지 마라."
"형이랑 너무 오래 침대에 있으면 정말 못하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다음날 해가 뜰 때까진 침대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될테니까.눈을 깜빡 감았다가 뜬 사이에 커다란 강아지 한마리는 작은 늑대 한마리가 되어 김독자를 잡아먹을 것처럼 바라봤다. 이 눈, 이 표정. 김독자를 자극하는 것이 있다면 그건 분위기였다. 섹스 상대의 성기 사이즈보다도, 몸매보다도 그를 자극하는 유일한 어떤 것.명백하게 유혹의 의미를 담고있는 눈동자, 발목을 간질이는 손끝, 눈으로 훑어졌을 뿐인데 발가벗겨진 듯한 감각.마른 우물의 밑바닥까지 던져버렸던 색욕을, 물을 채워 건져오는 이길영의 플러팅 앞에 그는 가련한 숫사슴에 지나지 않았다.
펜을 쥐어 굳은살이 박힌 오른손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입술로 짓누르는 행위가 김독자를 지배했다. 가벼운 버드키스처럼 보이지만, 벌린 입술 사이로 가지런한 치아가 손끝을 스칠 때마다 화끈거리는 감각에 그는 몸서리쳤다. 누군가 꿀로 제 몸을 적시고 있는 것 같았다. 가랑이 사이가 축축해진 것 같은데, 어떠한 수치심이나 모종의 두려움이 오히려 그를 등떠밀었다. 눈앞에 향신료가 있잖아, 네 밋밋한 요리에 좀 뿌려봐. 사실은 너도 원하고 있잖아, 하고.
"형, 복숭아뼈가 정말 예뻐요."
"읏, 하아... 거기만, 만지지 마.. 간지러워, 흐읍.."
이렇게 예쁜데? 바들바들 떨리는 손등위로 간지럽게 내려앉는 입술과 제 복숭아뼈를 살살 문지르는 손끝의 주인이 저를 점점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어린 것들은, 다 사랑스럽다는데. 제 눈앞의 녀석도 다르지 않았다. 어떻게 그래, 예쁜 눈동자에 담긴 것은 오롯이 자신 뿐이었다. 날 봐주세요, 제가 이렇게 당신을 취하기 위해 있어요. 거부하지 마세요, 그래봤자 저는 당신께 위해를 끼칠 수 없는 조그만 초식동물이랍니다.늑대가 양의 모습을 하고 고운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문을 열어주지 않는 건 어른들의 동화에 어긋난 행동임을 김독자는 알고있었다.
"후, 나, 아으, 흐.. 지금, 글을, 쓰고 있는게, 앗, 있는데.."
"잠자리에서 일얘기 하는 남자는 매력없는데."
삐죽거리며 종아리에 잇자국을 남기는 남자아이가 귀여워서 김독자는 무심코 웃음을 흘렸다. 어린애는, 어린애인데. 자신을 잡아먹으러 온 어린애. 김독자는 부드러운 이길영의 머리카락으로 살살 매만졌다. 손가락 사이로 물결치는 머리카락이 꼭 제 마음과 닮아있었다. 이길영이 쓸어내리면, 속절없이 끌려가버리는 그런. 괜히 욕심쟁이처럼 손끝에 닿은 귓가를 매만지자 단순에 표정에 성이 난다. 오, 당장 덮쳐버리고 싶다는 표정인걸. 시선에 꿰뚫리는 감각이 선연한데도 그는 애써 팔에 돋은 소름을 무시했다. 살면서, 처음으로 제 본능적인 공포를 억눌렀다. 호기심이 두려움을 이기는 순간이었다.
"다음 작품을, 포르노그라피로 해볼까 하고..."
".. 그거, 나한테는 박아달라는 소리로 들리는데요."
"그렇게 상스러운 표현은 안쓰, 앗, 잠깐, 흐읍!"
양의 둥근 발톱같던 손이 갈퀴가 되어 김독자의 옷자락을 거칠게 벗겨냈다. 날카로운 가시가 달린 밤의 껍질을 벗기고, 단단한 속껍질까지 벗겨내면 드러나는 뽀얀 속살.완전히 전라가 된 김독자는 살갗에 와닿는 찬공기에 속눈썹을 파르르 떨었다. 미약한 후회가 눈동자에 떠올랐지만, 눈꺼풀을 핥는 뜨거운 살덩이의 감각에 어느 순간부터 녹아 없어진 것 같다. 이길영은 제 몸의 어느 부위도 소홀히하지 않고 전부 건드리는데 온 감각을 집중한 사람처럼 보였다. 커다란 손이 둔부를 움켜쥐고, 얇고 긴 손끝은 누구에게도 보인 적 없는 부분까지 닿았다.
"앗, 하으, 응, 읍.. 가, 간지러워, 길영아..."
"왜 여기 부어있어요? 이상하다."
"...으읏, 흐.. 모, 몰라.."
무언의 깨달음이 이길영의 눈동자를 스치고, 한층 더 깊은 색으로 물들였다. 설마, 준비하고 온거에요?희열이 들끓는 목소리가 김독자를 감았다. 선악과를 한입 깨문 뱀처럼 온몸에 감긴 목소리가 얼마나 낮고 거친지 김독자는 저도 모르게 제 뒷구멍을 움찔거렸다. 이길영의 손끝이 닿은, 그곳을.
"..아, 정말 사람 미치게 하네."
"히윽, 아, 길영, 읍, 흐읏, 앙, 이길, 영, 앗!"
"어디서 이렇게 예쁜게 굴러들어왔지?"
음습한 욕망. 이성이 뚝 끊긴 순간, 소년은 순식간에 짐승으로 변모했다. 어디서 튀어나온 건지 모르겠는 젤로 구멍이 흥건하게 젖고 콘돔을 입에 문 이길영이 바지버클을 풀어내렸다. 단단한 다리가 김독자의 가랑이를 파헤쳐 벌리고, 얄팍한 그의 다리를 허리에 두르게 했다. 첫경험이라는 건, 단어일 뿐임에도 사람에게 어디서 기어나오는 건지 모르겠는 용기를 주었다. 김독자는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서 입술을 꾹 깨물고 발발 떨리는 손을 뻗어 이길영의 입가에서 콘돔을 빼앗아 제 손으로 뜯었다.
이길영은 홀린듯이 김독자가 서툰 손길로 콘돔을 뜯고, 떨리는 손으로 제것에 손을 대는 것을 바라보았다. 불안하리만치 떨면서도 웃음을 주체하지 못할만큼 사랑스러운 짓을 하는가 싶더니 기어코 둥근 뒤통수가 망설이다 빼꼼 고개를 들고 목소리를 냈다.
"미, 안. 이거 어떻게 씌워?"
"진짜 귀여운 짓은 혼자 다하네요, 형은."
더는 참지 못하고 울긋불긋한 귓가에 혀를 문대며 질척거리는 소리를 내는 이길영에 김독자는 작은 비명을 내질렀다. 저를 덮쳐 누르는 남자의 것에 비하면 조그마한 손이 이길여의 손에 겹쳐져 그의 물건 위에 닿았다. 얇은 막 밑으로 성이난 성기가 뜨거워 김독자는 움찔움찔 떨어댔다. 귀에서는 자못 음란한 소리가 뇌를 윙윙 울리고 정신을 조금 차리고 나니 김독자는 얼굴을 시트에 묻고 엉덩이를 한껏 쳐든 자세로 이길영의 앞에 내던져졌다.
"힉, 싫어, 아,이런, 자세, 흐응, 우읏, 싫어.길영, 아흐.."
"그러니까 누가 자극하라고 했어요?형이 자초한 거에요."
후. 장난스럽게 웃으며 엉덩이에 바람을 불어보이는 모습은 여유로웠지만 아랫도리만 두고 보자면 전혀. 이길영의 손바닥이 가볍게 김독자의 엉덩이에 내려앉았다. 그런 별것 아닌 터치에도 김독자는 깜짝 놀라 허리를 퍼뜩 띄웠다. 어허, 가만히 있어야죠. 양손바닥이 달덩이같은 엉덩이를 잡아벌리고 축축한 살덩이가 사이를 갈랐다. 김독자의 머리 위로 별똥별이 쏟아져내렸다.
"아, 아흐, 앗, 아앙, 시러, 후으, 읍, 하지마아, 그거, 긋,흐응,아!"
"형도 섰어요, 귀엽게. 한발 빼줄까요?"
재빠른 도리질. 여기서 더 뭘 하면 곧 죽을 것만 같았다. 김독자는 머릿속을 스치는 쾌락사의 정의에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거짓말,다들 거짓쟁이다. 시작도 전에 죽을 것만 같은데, 어떻게 이래. 이렇게 위험한 것인줄 알았더라면 손대지 않았으리라. 이길영은 그런 김독자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허리를 들어다 제 위에 앉혔다. 자연스럽게 어깨에 둘러지는 팔, 유두를 와락 깨무는 이길영의 이빨은 날선 맹수의 것처럼 날카롭지는 않았지만 작은 돌기를 빨갛게 부풀리기엔 충분했다.
"시,이런, 응,읏,시러,그만,아악,히윽,흣.."
"형은 배꼽도 귀엽고, 어떻게 좆도 예뻐요?"
"하으,아,히으..길여,길영아...아아, 으응!"
"예쁘다, 우리형."
쪽, 하는 소리는 귀여운데 유두를 세게 꼬집고 비트는 손이며, 제 성기를 거칠게 문지르는 손 등은 하나도 귀엽지 않아서 김독자는 속절없이 우는 소리를 내뱉었다. 백지같았던 몸은 새까만 먹물을 남김없이 흡수하고 있어서 허리가 절로 흔들렸다. 꼿꼿하게 일어선 이길영의 것이 엉덩이에 부벼지는 것은 물론이요, 이길영의 손길이 지나간 김독자의 성기 또한 이길영의 근육잡힌 배에 문질러졌다. 쿡쿡 닿는 배가 단단해서, 꽉 붙든 어깨가 넓어서 그는 무심코 온몸에 힘을 빼고 이길영에게 매달렸다. 몸 안쪽이 근지러운데, 누군가 속 시원하게 긁어줬으면 좋겠는데. 그런 생각을 하던 차에 이길영이 김독자의 팔을 단단히 제 목에 둘러주었다.
"으음... 많이 풀어줬으니까, 괜찮겠지만. 그래도 형은 처음이니까. 많이 아프면 목 깨물어요. 알았죠?"
"어, 응..? 뭐, 무슨, 말, 흐극, 아, 아!흣,끄읍..."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자신을 반으로 쪼개는 것 같은 느낌에 잠시 늘어졌던 신경세포가 전부 감각을 곤두세웠다. 등줄기가 둥글게 휘고 김독자의 손끝이 이길영의 등에 붉은 자국을 남겼다.아픈데, 아픈데.김독자는 살이 벌어지는 고통보다 일순간 제 안쪽을 쿡 찍어누른 이길영의 것에 두 눈이 뒤집힐 것 같은 감각에 사로잡혔다. 유두를 깨물고 성기를 쥐고 흔드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지만 같은 맥락의 쾌감. 이길영은 살짝 인상을 찌푸리고 김독자의 입술을 물어뜯었다.
"형, 내꺼 잘리겠어요. 힘 풀자, 응?"
"흐, 아, 아아, 하으.."
착하다, 우리 형. 있는 정신 없는 정신을 끌어모아 땀으로 젖은 이마에 입맞추고 성기를 애무하자 겨우 다시 온몸이 말랑하게 돌아왔다. 정신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이길영의 이름을 부르는 김독자는, 저도 모른 사이에 말간 액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평소에 자위와도 연이 멀어 채액은 농도가 짙었다. 하지만 그는 제가 뭘 싸지르는지에 관심을 주기엔 너무 큰 쾌락에 휘둘리고 있었다. 제가 느끼는 지점만을 쿵쿵 짓찧는 이길영이 원망스러우면서도 성기가 빠져나갈라 치면 제 구멍을 꼭 조이고 있었으니, 이길영에게는 그저 유혹적인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남자를 품어본 적 없는 속살임에도 축축하고 뜨거운 것이 이길영의 것에 꽉 들러붙어 놓아주지 않았다. 형, 이거봐요. 속살이 딸려나와. 부러 김독자의 고개를 숙이여 접합불를 보여줄 정도로 여유를 부렸지만 정작 당사자는 빠른 추삽질에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쾅쾅 몰아치는 허릿짓은 속도를 따라가기 버거워 종종 엇박자로 갈라졌다. G스팟은 쉬이 제 위치를 침입자에게 내어주었고 벌써 김독자는 두번째 사정을 맞이했다.
"아앙, 하, 히끕, 길영, 아, 형 주거... 흐으, 하앙, 읏, 진짜로오.."
"안죽어요, 형. 이렇게 좋아하는데?"
"아냐,히익,앗, 아아, 만지지, 마, 아프, 흐읍, 힉, 아아!"
두번째 사정까지 마치고 힘없이 덜렁거리는 그의 것을 쥐는 손길이 악마의 것과 같아 김독자는 마찬가지로 별로 힘이 들어가지 않은 손을 들어 이길영의 손 위에 얹었다. 말리는 손길이었지만 이내 덧없이 이길영의 손바닥 아래로 밀려들어가 제 것을 제가 애무하는 꼴이 되었다. 아픈데, 미치도록 기분이 좋았다. 빨갛게 부어오른 성기는 건드리기만 해도 쓰라렸다. 더는 안나온다고 사정했지만 이길영은 막판 스퍼트로 밀어붙일 뿐이었다.
"기, 길영,하앙! 흑, 흐읍, 읏, 아흐, 우읏, 뭔가, 이상..그, 그만.."
"후으, 이제 저도읏, 한계.. 같이 가요."
"아, 아니,우응, 흣, 그게 아니, 앗, 히우, 읏, 그만, 잠,앗,힉..!"
부르르 몸이 떨리고 김독자는 입술을 콰득 깨물었다. 이길영은 사정과 동시에 김독자의 어깨에 이를 박아넣었다. 만족스러운 한숨과 함께 이길영의 제가 남긴 키스마크 위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런데 김독자는 조용히 입을 틀어막고 벌벌 떨기만 하고있어 이길영은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입을 열려다 축축하게 젖은 시트를 발견했다.
"...형, 설마?"
"아, 아냐, 그게 아니, 아니라, 흑, 으흑...."
김독자는 수치심과 당혹감에 사로잡혀 얼어붙었다가 기어이 울음을 터뜨렸다. 구슬픈 울음소리가 듣는 이마저 서럽게 할 정도였지만 이길영은 잠깐 멈칫했다가 한손으로 입을 가리고 어깨를 들썩이다 결국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하! 첫경험에 시오후키라니! 형은 진짜 대단해요!"
"흐윽, 끕, 이길, 영, 너, 진짜, 다신 안보, 흐어어엉..."
내가 미쳤지, 미쳤지, 미쳤어! 이길영의 웃음소리가 커져감에 따라 김독자의 울음소리 또한 커졌다. 이길영은 눈물이 맺힐 정도로 웃다가 너무 울어서 눈가가 불긋해진 김독자를 안아들고 등을 토닥였다. 괜찮아요, 형은 오줌 싼게 아니라 시오후키란 걸 한거에요. 기분 너무 좋아서. 김독자는 자신이 너무 덜렁 들린 것에 대해 깜짝 놀라 울음까지 멈추곤 이제 딸꾹질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흡, 딸꾹, 내가, 멈추랬, 딸꾹"
"진짜 별게 다 귀여워 죽겠네요. 씻어요, 제가 뒷정리 하고 있을게요."
김독자는 욕조에 저를 내려놓으려는 이길영의 팔을 붙잡고 도리질을 쳤다. 몸에, 딸꾹, 힘이 없어.. 씻는거, 딸꾹, 도와줘. 칭얼거리는 듯한 목소리는 확실히 살짝 쉬어있었고 나른한 피곤이 온몸에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그런데도 표정은 또, 맛있는 것을 맛보았을 때의 흡족함.
"욕조에서 나갈 때까지 딸꾹질 안멈추면 다신 너랑 섹스 안해."
"형 딸꾹질 멈출 때까지 욕조에서 한판 더 할까요?"
"으, 아직도 할 힘이 남았니?"
"차고 넘치죠."
"이래서 어린 것은..."
귀엽죠? 김독자의 불긋불긋한 눈가에 쪽 소리나게 입맞추는 이길영이 환하게 웃었다. 짐승은 어디가고, 다시 대형견 강아지만이 눈앞에 남았다. 김독자는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쉬며 이길영의 날렵한 턱을 양손으로 감싸고 푸념하듯 입을 맞췄다.
아무래도 인생의 모토였던 <자다가 죽기>는 실패할 것 같다.
김독자는 제 혀끝을 슬쩍 깨물며 애교를 피우는 이길영을 슬쩍 노려보며 차기작의 제목을 정했다. 쾌락사. 감각에 둔한 남자와 예민한 남자의 포르노그라피가 곧 그의 손에서 피어나게 될 것이다.

[성좌,
'털격판담치의 동명이인'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쾌락사
길영독자 / 7대 죄악, 색욕